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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 - 평신도에게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탐구포럼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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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 - 평신도에게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탐구포럼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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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 - 평신도에게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탐구포럼 07)
저자/출판사이재근, 송인규, 정재영 외/IVP
ISBN9788932811789
크기170x230mm
쪽수396p
제품 구성낱권
출간일2017-06-02
목차 또는 책소개상세정보참조


  기본상품명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 - 평신도에게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탐구포럼 07)
  출판사 IVP
  저자/역자 이재근, 송인규, 정재영 외
  ISBN 978-89-328-1178-9
  출시일 2017-06-02
  크기/쪽수 170x230mm 396p

 
종교개혁 500주년, 이 땅의 교회와 평신도 앞에 놓인
구체적 과제와 도전은 무엇인가
종교개혁 운동의 중요한 주제였던 ‘만인제사장설’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한국 교회와 평신도들에게 결실을 맺고 있는지 성찰함으로써,
성경이 말하고 종교개혁이 주창했던 하나님 백성의 온전한 정체성 회복을 모색한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한국 교회를 위한 탐구’를 모토로 각종 연구 활동과 자료 간행을 위해 설립된
한국교회탐구센터(The Research Center for the Korean Churches)와 한국 IVP가 함께 만드는 무크지
“교회탐구포럼” 7탄 출간!
 
■ 책 소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전 세계가 떠들썩하고 한국도 교단마다 단체마다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종교개혁 운동의 원동력과 지향 목표가 되었던 갖가지 사상과 이념이 오늘의 교회와 신앙에 어떤 함의를 던지는지 찾아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주제와 사안이 얘기되는 가운데 ‘평신도’에 대한 탐구는 매우 드물다는 인상을 받았고, 바로 이 점에 착안해 교회탐구포럼 7권은 ‘평신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총 3부로 기획된 이 책의 1부는 두 편의 논문이고, 2부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해설이며, 3부는 세상 속 현장을 살아가는 평신도 열아홉 명의 생생한 증언이다.
 
종교개혁은 특정한 환경과 일정 기간에 걸쳐 발생한 역사 사건이지만, 그 의미는 모든 지역과 모든 시대의 교회를 총 망라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평신도의 위상과 사명’이라는 주제 또한 앞으로도 계속 한국 교회를 향한 커다란 도전과 소망을 제공하는 지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의 1부는 두 편의 논문이고, 2부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해설이며, 3부는 세상의 현장을 살아가는 평신도 열아홉 명의 생생한 증언이다. 머리말부터 시작해 1부, 2부, 3부 순서대로 그 주제와 내용을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3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부터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여기 수록된 열아홉 명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바짝 뒤쫓아 가다 보면 내가 그들 각자의 삶 가운데 발을 디딘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이토록 응어리진 아픔과 모순투성이의 삶을 헤쳐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세상살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의 고뇌와 안간힘, 좌절과 한숨조차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산 제사임을 뼛속 깊이 절감하게 한다.
 
앞으로 ‘세상 속 평신도의 삶’이라는 표현은 손쉬운 단어의 조합으로만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삶의 영역은 서로 달라도 우리가 참여하는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갈망한다면, 우리는 함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요,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동일한 새 하늘과 새 땅의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이 증언들은 알려 준다.
 
1부의 첫 번째 글 “종교개혁은 어떻게 사제주의를 무너뜨리고 평신도를 재발견했나”에서 이재근 박사는 먼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드높이지 않을 수 없었던 신학적 형편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다. 종교개혁을 통한 ‘전 신자 제사장’ 원리의 천명으로 말미암아 중세 가톨릭교회가 표방하던 사제주의는 어느 정도 허물어졌지만, 교회 직분자의 위상에 대한 개신교 내의 견해 차이로 인해 제도적 측면에서의 사제주의적 잔재는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음을 지적한다.
 
1부의 두 번째 글 “한국 교회는 평신도 신학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서 송인규 교수는 비록 오늘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평신도’가 성경 용어인 라오스(백성)와 차이가 있지만, 전자의 용법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성직자 계층이 아닌 하나님 백성의 신분과 사명을 규명하는 일이기에, 글의 대부분을 이 작업에 할애한다.
 
2부에서는 오늘날 한국 교회 내 평신도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가 보고된다. 한국교회탐구센터는 여론조사 전문 기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19세 이상 전국의 개신교인 1천 명을 대상으로 2017년 3월 10일부터 3월 27일까지 18일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정재영 교수는 평신도의 정체성, 직업 소명, 성경 이해와 목회자 의존도, 교회 활동과 인구학 변수 등 네 영역의 문항에 따라 조사 결과를 요약해 설명하고 제언한다. 평신도로서의 정체성 문제와 직업 소명에 관한 의식 문제가 초미의 관심을 끌 것이다.
 
 
 
 
 
■ 차례
머리말: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을 내며 _송인규
 
01 종교개혁과 평신도
01-1 종교개혁은 어떻게 사제주의를 무너뜨리고 평신도를 재발견했나 _이재근01-2 한국 교회는 평신도 신학을 수용할 수 있는가 _송인규
 
02 평신도 소명의식에 대한 조사 _정재영
 
0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_평신도 19인의 증언
⦁회사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_김효주
⦁헬조선에서 예술 노동자로 살아남는 법 _백소망
⦁기술 노동자로 살아가기 _양창모
⦁페미니즘이 나와 무슨 상관이나이까 _오수경
⦁흙과 바람과 비와 더불어 사는 삶 _주호석
⦁강정, 여기 사람이 있다 _최혜영
⦁꽃은 꽃 숨을, 나무는 나무 숨을 _홍순관
⦁질문하고 있습니까? _김애희
⦁통일, 꼭 해야 하나요? _박일수
⦁청년에게 머리 둘 곳을 허하라 _임하은
⦁세월호 참사, 그 고통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다 _박종운
⦁어디를 가도 창현이가 있다 _최순화
⦁방학이 무려 일 년이라니! _이수진
⦁비록 한 달란트 받았을지라도 _정의석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_홍윤경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이웃, 난민 _이일
⦁꼬질꼬질한 비둘기, 결코 잔잔하지 않은 평화 _문아영
⦁하나님의 계획, 탈북자 _조명숙
⦁목적이 이끌지 않는 삶, 우리 모두가 동등한 ‘우정의 공동체’라는 꿈 _최규창
 
■ 저자 소개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1975년생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1949년생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1967년생
김효주 코코몽키즈랜드 본부장, 1980년생
백소망 비정규직 예술 노동자, 1990년생
양창모 춘천 건축 현장의 기술 노동자, 1978년생
오수경 청어람ARMC 편집장
주호석 전북 지역 농부, 1979년생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홍순관 가수, 평화활동가, 1962년생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1977년생
박일수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연탄나눔운동 사업팀 팀장, 1979년생
임하은 (주)모두의기숙사 대표, 1990년생
박종운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겸 안전사회 소위원장, 1965년생
최순화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엄마, (사)세월호진상규명을위한가족협의회, 1965년생
이수진 꽃다운친구들 대표, 1970년생
정의석 한빛맹학교 교사, 1980년생
홍윤경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장, 1968년생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난민 담당 변호사, 1981년생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1983년생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및 피난처 이사, 1970년생
최규창 (주)호성로고스 대표, 1968년생
 
■ 책 속으로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도 베드로의 열쇠를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교와 사제가 계승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만 성례와 미사에 참여할 수 있고, 그들이 읽고 해석해서 전하는 성경말씀만 들을 수 있고, 그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만나 죄를 사함 받아 구원받을 수 있고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 사제주의 신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를 거부했다. 비록 참된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이지만, 이 참된 교회가 교황과 주교를 통해 계승된 로마의 바로 그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믿음이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교회는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선포되고 집전되는 곳으로, 그런 교회는 모두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였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스스로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므로, 소위 성직, 즉 거룩한 직분은 사제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평신도와 성직자 간의 구별은 원칙상 존재할 수 없으며, 이들 간의 지위와 신분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명’ 즉 ‘부르심’이라는 개념이 재정립되었다. 하나님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모든 신자를 부르신다.
_“종교개혁은 어떻게 사제주의를 무너뜨리고 평신도를 재발견했나”에서
 
사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명약관화하다. 만일 평신도 신학의 원리와 정신이 성경의 가르침에 연유하고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교회의 참된 모습과도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현실 가운데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 물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동조하느냐, 사태가 얼마나 순조로우냐, 일의 결과가 얼마나 만족스러우냐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지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설혹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아도 평신도 신학을 실현해야 할 당위성은 절대로 바래지 않을 것이요, 평신도 신학을 향한 우리의 결연한 의지 또한 결코 가로막히지 않을 것이다.
_“한국 교회는 평신도 신학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서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 전통은 교회 안에서의 삶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개신교인의 모든 생활에 확대·적용해야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하나의 의례로 예배에 참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무대에서 실천윤리의 행동 지향성이 표출되어야 한다.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주장과 달리,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초월의 기준에 따라 삶을 영위하며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전통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소명 의식이다. 목회자를 목회에 대한 소명으로 부르셨듯 각각의 평신도들 역시 그들의 직업 활동에 대한 소명으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길 원하신다는 소명 의식이 우리에게 정립되어 있어야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_“평신도 소명 의식에 대한 조사”에서
 
성경을 찾아봐도 직장생활에 대해 정리된 행동지침은 찾기가 쉽지 않다. 노예제도 문화에서 노예가 주인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직장 상사에게 취해야 할 자세로 둔갑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교훈을 정리한 잠언들을 직장 처세술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사로 구별되어 세워진 나실인을 보며 음주문화를 적대시하기도 하고, 식민지 백성이 지배국의 총리가 된 이야기가 자기 계발의 교본이 되기도 한다. 직장생활에서 성경이 직장 내 신우회의 교재로만 인식되는 수준의 이분법은 많이 완화된 것 같지만, 성경을 통해 직장생활의 교훈을 얻으려 할 때 여전히 막막한 감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_“회사원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나는 내게 ‘말’이라는 언어 외에 음악이라는 언어가 하나 더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에 펼쳐진 여러 사건들 속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야기 속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능력 또한 주어졌다. 이것이 나의 노력으로 획득된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진 것이라고 인식이 전환된 순간 예술가로서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것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깨어진 세상과 절망으로 가득한 사회를 보는 눈이 깊어질수록 나의 부르심이 명확해짐을 느낀다. 물론 작업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여겨질 때도 있지만, 나의 노래에 반응하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 느끼는 행복과 기쁨에 비할 수 없다.
_“헬조선에서 예술 노동자로 살아남는 법”에서
 
학생 선교단체에서 캠퍼스 간사로 살 때는 그것이 ‘부르심’이고 사명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역자라는 직업은 보다 쉽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부르심의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부르심’이라는 것이 전문 사역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 세상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꽤 오래 돌아왔지만 평신도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이 자리가 제가 원래 살아갈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_“기술 노동자로 살아가기”에서
 
나의 활동 어디에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매년 부활절은 기쁘지가 않고 성탄절 역시 서운하다. 한번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다. 대학 때 배웠던 목사님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상을 나눌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와 멀어졌다. 강정에서 다양한 개신교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만났다. 가톨릭 미사도 아주 가까이에서 봤다. 무엇보다 강정은 신자들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곳이기도 했다. 경찰들과 뒤엉켜 싸울 때 고개를 들면 한라산이 보였다. 강정천과 바당으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 가끔 교회 후배들이 강정에 찾아와 자신들의 삶이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더욱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답을 줄 수 없다. 스물다섯에 강정에 와서 이제 서른을 맞았다. 강정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임용 준비를 그만둔 것 또한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되지 않고 어떤 일이든 하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명명했다. 강정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언어를 잃었다. 잃어버린 언어 속에는 원망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있었다.
_“강정, 여기 사람이 있다”에서
 
나 스스로도 내가 지도력을 가질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했다. ‘의심받고 있다’ ‘테스트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에, 능력과 헌신성을 인정받기 위해 내달렸다. 완벽하게 수행해야 했다. 앞선 남성 목사들이 하지 않은 걸 해내야 했다. 활동가로 인정받기 위해 운동에 대한 의지, 치열함, 전투성, 뚜렷한 문제의식, 헌신성 등 운동 현장에서 요구하는 가치와 자질을 무장한 것처럼 행동했다. 실은 더 큰 어려움은 외부에 나를 증명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내게도 ’분노와 자신감을 죄악시하는’ 장벽을 넘어서는 일은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_“질문하고 있습니까?”에서
 
학생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기도했습니다. 아침기도회 담당일 때는 중앙도서관에 먼저 들러 게시된 아침 신문을 읽고, 그날의 기도제목을 정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당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어 2000년 6·15 공동선언, 대량 탈북자 사태 등의 남북관계 이슈가 많았고, 남북관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분단 구조 내에서 화해자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단의 구조적 갈등 상황이 만들어 낸 부정적 영향이 남북한의 주민들에게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갈등의 구조 안에 놓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_“통일, 꼭 해야 하나요?”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싫습니다. 아이가 없는데 돌아갈 일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못 견디게 보고 싶으면 울고,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 욕도 하고, 이 큰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달라지는 것 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 농성도 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있으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고, 이것이 이제 제게는 일상입니다. 다스리고 통제하기 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상은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외쳐 대는 복음보다 이게 훨씬 더 복음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수님께서 외식의 달인이 되어 버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왜 그렇게 꾸짖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용은 거의 없고 그럴싸한 형식만 남아 버린 교회와 예배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모습은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던 500년 전이나 천국을 무기삼아 헌금을 갈취하는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_“어디를 가도 창현이가 있다”에서
 
이제 나는 어떻게 평신도 선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노동운동 활동가로서의 삶은 이대로 끝인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이 마흔 셋에 여러 가지 회한과 고민도 밀려왔다. 그때였다.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 찾아갔던 곳, 노조가 어려울 때마다 지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던 곳, 510일 파업투쟁 때도 매주 조합원 총회를 하러 찾아갔던 곳, 영등포산선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총무로 계셨던 손은정 목사님은 비정규직 투쟁을 포함한 노동 현장을 잘 알면서도 영등포산선의 사역을 이해하는 실무자를 찾고 계셨다.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다. 과연 ‘노동선교’란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년 이상 시간을 끌다가 결국 영등포산선 실무자로 일을 시작했다.
투쟁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노동자들, 여러 역경 속에서도 현장에 충실한 노동자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노동자들, 그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영등포산선 내에 ‘비정규노동선교센터’를 만들어 비정규직을 지원·연대하는 한편 기독교계 내에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알리고 작은 실천에 동참하게 하는 활동을 했다. 기독교계와 노동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내게 맡겨진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_“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사실 한국의 맥락에서 법률가로서 살아가면서 이와 같이 소위 공익 변호사로 불리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진로를 선뜻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판사도 할 수 있고, 큰 로펌에 가서 돈도 벌 수 있을 텐데, 네 꿈이 그렇다면 지지해 줄 수도 있지만 몇 년만 법원에서 일하다가 가면 안 되겠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잘 일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물으신 부모님의 말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스스로도 미래에 대한 아무 보장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것에 적잖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 혼자라면 괜찮은데 가족들까지 잘 책임질 수 있을까’ ‘몇 년 동안은 괜찮지만, 내가 이 일을 평생 변함없는 열정으로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들이었습니다. 비즈니스 변호사로서 큰 기업을 변호하는 것은 왠지 나에게 맞지 않고, 판사로서의 삶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편을 들어주는 적극적 활동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던 당시 제가 찾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전적으로 소수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후회가 없습니다.
_“보이지 않는 우리의 이웃, 난민”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루터도 법의 울타리 바깥에 내쳐졌다. 예수님도 루터도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우리, 내 편이라고 확신하는 무리의 바깥에 놓인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 교회 바깥에 놓인 존재들은 누구인가. 그 존재들을 온 몸으로 환대함으로써 매일같이 훼손되는 경험 없이는 역사적으로 위대했던 이 사건, 종교개혁은 그저 과거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옳다고 확신하는 그 진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매일매일 새로운 질문과 도전에 직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또는 우리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울타리 바깥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온 몸으로 환대하지 않는 한, 세상이 줄 수 없다고 했던 예수님의 평화를 조금이라도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_“꼬질꼬질한 비둘기, 결코 잔잔하지 않은 평화”에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개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는 지난 120년 동안 초기의 민족적 수난과 열악한 상황 속에서 민족과 함께 고난받으며 괄목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에 희망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비난을 받으며 쇠락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변화와 갱신, 개혁을 위한 제안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아름다운 과거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성찰함으로써 밑바닥으로부터 일어나는 뼈저린 회심과 새로운 비전이 중요합니다.
 
한국교회탐구센터(The Research Center for the Korean Churches)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작은 몸짓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한국 교회를 위한 탐구’를 모토로 201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답습해 왔지만 성서적·신학적·역사적 기반은 모호한 한국 교회의 관행과 면모들을 하나하나 밝혀 갈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도 구현되지 못했던 과제들을 진지하게 탐구할 것입니다. 한국교회탐구센터는 한국 교회의 참된 회복을 위해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과 선지자적 연민을 함께 일깨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매년 ‘교회탐구포럼’을 개최함은 물론 연구 활동 및 자료 발간 등을 위해 힘쓸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와 직분자: 직분제도와 역할”(2011년), “한국 교회와 여성”(2012년), “급변하는 직업 세계와 직장 속의 그리스도인”(2013년), “교회의 성(性), 잠금 해제?”(2014년), “한국 교회 큐티 운동 다시 보기”(2015년), “한국 교회와 제자훈련”(2016년),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2017년) 등의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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