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를 따라』는 여느 강해와 다르게 읽기가 수월합니다. 전반적으로 신학적인 전문용어가 많지 않고 문장 호흡이 길지 않아서 이해가 쉽습니다. 복잡하고 난해하지 않고 간단명료합니다. 형식이나 논리 전개, 사용하는 언어에 제약이 없습니다. 박진감이 있는 선악의 대립, 거친 어투와 표현들이 활기찬 느낌을 줍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곳곳에서 다른 복음서의 특징을 열거해 주어서 마가복음의 무색무취의 독특성을 거꾸로 깨닫게 되는 묘미를 맛보기도 합니다. _ 이옥희(남인도교단 선교사, 희망발전소 대표)
◈ 지은이 머리말
마가의 글은 그 어떤 복음서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데, 그 에너지는 십자가 죽음의 폭발력이다. 마가가 남겨 놓은 글에는 마가의 신학이 있다. 우리는 그의 신학을 따라 나사렛 예수의 실체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 마가의 신학은 ‘신 죽음의 신학’이다. 나사렛 예수는 신의 아들이고, 그의 죽음은 신의 죽음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영광의 신이다. 만약 그가 신이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마가복음은 나사렛 예수의 신성을 여러 군데서 증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마가복음 전체가 그의 신성을 증언하는 글이다.
◈ 차례
추천의 글 머리말
마가복음 1장 하나님의 아들(1:1) 훌륭한 선배(1:2-8) 인내와 겸손(1:9-11) 혹독한 훈련(1:12-13) 하나님 나라의 담지자(1:14-15) 어부들을 부르심(1:16-20) 귀신들을 쫓아냄(1:21-28) 세상의 치료자(1:29-34) 그가 온 목적(1:35-39) 첫 번째 신앙고백(1:40-45)
마가복음 2장 투쟁의 서막(2:1-12) 비주류의 길(2:13-17) 잔칫집의 곡소리(2:18-22) 예수의 인본주의(2:23-28) 해체 시대의 기독교(2:28)
마가복음 3장 안식일 논쟁(3:1-6) 하나님 나라 해방구(3:7-12) 사도임명 (1)(3:13-19) 사도임명 (2) 바리새파의 파상공격(3:20-30) 어머니와 동생들(3:31-35)
마가복음 4장 씨를 뿌리는 사람(4:1-9) 계시의 경계선(4:10-12) 예수의 자기계시(4:13-20) 세상의 등불(4:21) 하나님의 비밀(4:22-23) 은혜의 세계관(4:24-25) 아우토마테(4:26-29) 겨자씨 비유(4:30-32) 사물, 의미, 계시(4:33-34) 폭풍을 잠재우는 예수(4:35-41)
마가복음 14장 유월절 이틀 전(14:1-2) 여성신학의 출발점(14:3-9) 가룟 유다의 배신(14:10-11) 유월절 어린 양(14:12-21) 성만찬(14:22-26) 갈릴리로 가겠다(14:27-31) 예수의 실존(14:32-42) 배신과 체포(14:43-50) 어떤 젊은이 이야기(14:51-52) 신성모독(14:53-65) 베드로의 눈물(14:66-72)
마가복음 15장 빌라도와 예수(15:1-5) 사형선고(15:6-15) 조롱당하는 예수(15:16-20) 무능력한 전능자(15:21-32) 신 죽음의 신학(15:33-41) 예수의 장례(15:42-47)
마가복음 16장 예수의 부활(16:1-8) 마가의 짧은 종결문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16:9-11)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16:12-13) 마지막 명령(16:14-18) 제자들과 함께 영원히(16:19-20)
◈ 본문 중에서
이해타산에 밝은 이들이 나사렛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고 따라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돈키호테의 속삭임에 끌려 집을 떠나는 산초 판사와 같은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성취하려고 떠난 하나님 나라의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은 대단하다. 그들의 생각이 좀 잘못된 부분들이 있었을지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따라간 대상이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이다. “마가복음 1장_ 어부들을 부르심” 중에서
믿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몸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본체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부활한 나사렛 예수의 몸속에만 있다. “마가복음 4장_ 혈루병 여인의 믿음” 중에서
군중은 물질을 추구하며,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황홀하게 하는 기적을 원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사랑의 연합을 사모한다. 욕망은 물질의 해체와 함께 사라지지만, 사랑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광의 본체와 연합시킨다. 영광의 본체이신 그리스도의 몸은 장차 우리가 참여하게 될 종말론적 희망의 약속이다. “마가복음 6장_ 영광의 본체” 중에서
하나님 정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지극히 작은 자로 세상에 보내심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태초에 있었던 빅뱅과도 같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에 작은 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옆에 두고서 서로 누가 더 크냐를 놓고 싸운다. 나사렛 예수가 제자들 한가운데 세우고 안아준 어린아이는 나사렛 예수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치는 인간들의 정치가 끝나는 데서 시작된다. 나사렛 예수 사건은 인간의 실존을 내부적으로 붕괴시키고 하나님의 정치를 여는 종말론적 혁명이다. 하나님의 정치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이 땅에 도래한 역사적 실체다. “마가복음 9장_ 작은 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