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고 있는 기독교 용어에는 구복신앙적 요소, 샤머니즘, 비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것들이 많다. 때문에 바른 교회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첫걸음의 시작일 것이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다. 어떤 작가는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안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의 언어에 비해 한글은 부사와 형용사가 현저하게 발달해 있어 영어로 번역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나오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구절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실력 좋은 번역가가 번역한다고 해도 아주 우스운 영어가 되기 십상이다. 영어로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아픔과 한의 정서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상한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는 매해 정기적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욕쟁이 대회’가 있다. 심사의 기준은 똑같은 욕을 반복하지 않고 끊김 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보통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퍼붇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다. 다른 언어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많은 형용사와 부사를 명사의 앞뒤에 자유롭게 섞을 수 있고, 한자를 섞어 언어의 조합과 유희, 새로운 언어의 탄생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 중국은, 한자의 수가 너무 많아 자국민마저도 한자를 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한글은 40개의 자음(쌍자음 포함 21개)과 모음(이중모음 포함 19개)만으로도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러다 보니 생긴 말이 우리말은 ’아‘와 ’어‘가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교회 용어 또한 조사 하나가 붙느냐 마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단어의 유래와 의미를 알고 나면 절대 쓸 수 없는 말들도 있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는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적인 요소를 기독교 신앙에서 걷어내는 노력을 부단히 해 왔다.
저자는 1년 6개월여 동안 국민일보에 <교회 용어>를 매주 칼럼으로 연재하며 올바른 기독교 용어를 소개함으로써 신앙에 대한 믿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